-
“애치슨, 이승만 싫어해 귀국 막았다”
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 미 군정(軍政) 책임자 존 하지(John Reed Hodge·1893~1963) 중장의 특별보좌관을 지낸 조지 윌리엄스(George Zur Wi
-
“박정희는 자기 성공의 희생자였다”
5·16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흘렀다. 대한민국 역사에서 5·16만큼 논쟁이 이어지는 사건을 찾긴 쉽지 않다. 누군 그걸 ‘구국의 결단’이라 칭송하고, 또 다른 쪽에선 ‘군부 독
-
“박정희는 자기 성공의 희생자였다”
5·16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흘렀다. 대한민국 역사에서 5·16만큼 논쟁이 이어지는 사건을 찾긴 쉽지 않다. 누군 그걸 ‘구국의 결단’이라 칭송하고, 또 다른 쪽에선 ‘군부 독
-
조갑제가 보는 5·16은 정당성, 역사 잣대로 봐야 지난 60년은 영웅들 시대 제2의 박정희·이병철 필요
근현대사의 분수령이 됐던 5·16이 50주년을 맞았다. 좌파냐 우파냐, 그 시대를 경험했느냐 아니냐에 따라 5·16에 대한 평가는 큰 차이를 보인다. 언론인 조갑제씨(왼쪽)와 연
-
은신처 정보 제공 ISI … 한 발은 CIA 다른 발은 탈레반
오사마 빈 라덴(Osama bin Laden)의 은신처 파악에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파키스탄 군정보국(ISI·로고)은 테러 정보 수집에 뛰어나다. 빈 라덴이 수도 이슬라마
-
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(213) 아들을 조선에 지원병 1호로
▲1949년 4월 베이징 교외 샹산(香山 향산)에 머무르던 마오쩌둥과 장남 마오안잉. [김명호 제공]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는 한국전에 파병할 지원군(支援軍)의 명칭을 놓고 숙고했
-
마오 “내 아들을 조선에 지원병 1호로 보내겠다”
1949년 4월 베이징 교외 샹산(香山 향산)에 머무르던 마오쩌둥과 장남 마오안잉. [김명호 제공]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는 한국전에 파병할 지원군(支援軍)의 명칭을 놓고 숙고했다
-
[6·25 전쟁 60년]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(236) 새 미8군 사령관
1953년 7월 막바지 휴전협상이 벌어지고 있던 판문점에서 미군 최고 지휘관들이 기념촬영을 했다. 오른쪽 첫째가 마크 클라크 유엔군 총사령관, 셋째가 그해 2월 한국에 부임한 맥
-
[6·25 전쟁 60년] 대구에서 품은 강군의 꿈 (234) “스탈린이 죽었답니다”
공산군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대한민국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제임스 밴플리트 미 8군 사령관이 한국을 떠나기 전 서울대로부터 1953년 1월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. 당시 서울대는
-
[중앙시평] 과거를 믿어야 미래를 믿는다
권영빈경기문화재단 대표·전 중앙일보 사장 “서울에서 시위를 시작할 예정이다. 300만 엔을 더 요청하고 있다. 불가닌에게 전화하다. 우리(남조선) 동지들에게 300만 엔 재정지원
-
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(187) 장제스, 소련 코민테른 간부와 아들 교환
▲시베리아 시절 중기계창 동료들과 야유회를 나온 장징궈(앞줄 좌6)와 부인 파이나(앞줄 좌5). 파이나는 중국에 온 뒤 시어머니로부터 장팡량(蔣方良)이라는 중국 이름을 받았다.
-
장제스, 소련 코민테른 간부와 아들 교환 제의 거절
시베리아 시절 중기계창 동료들과 야유회를 나온 장징궈(앞줄 좌6)와 부인 파이나(앞줄 좌5). 파이나는 중국에 온 뒤 시어머니로부터 장팡량(蔣方良)이라는 중국 이름을 받았다. 장
-
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(185) 여전사 68명
▲항일전쟁 시절 팔로군 산둥(山東)종대 조직부장 출신 우중롄(吳仲廉·앞줄 맨 오른쪽)은 친구 쩡즈(曾志·앞줄 왼쪽에서 일곱째)의 소개로 1927년 입당했다. 그는 신중국 변호사
-
혁명과 전쟁 소용돌이 거친 여전사 68명 한자리에
항일전쟁 시절 팔로군 산둥(山東)종대 조직부장 출신 우중롄(吳仲廉·앞줄 맨 오른쪽)은 친구 쩡즈(曾志·앞줄 왼쪽에서 일곱째)의 소개로 1927년 입당했다. 그는 신중국 변호사 제
-
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(181)옌바오항
▲소련 홍군이 동북을 점령하자 장제스는 가장 믿을 만한 두 사람을 동북에 파견했다. 1946년 1월 창춘에 도착한 쑹메이링(앞줄 왼쪽 첫째)과 장징궈(오른쪽 셋째)를 맞이하는 소
-
옌바오항, 국민당 파티서 ‘독일의 소련 침공’ 첩보 빼내
소련 홍군이 동북을 점령하자 장제스는 가장 믿을 만한 두 사람을 동북에 파견했다. 1946년 1월 창춘에 도착한 쑹메이링(앞줄 왼쪽 첫째)과 장징궈(오른쪽 셋째)를 맞이하는 소련
-
[6·25 전쟁 60년] 지리산의 숨은 적들 (128) 전쟁 전의 좌익들
지리산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은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. 지리산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 뒤에도 주마등처럼 늘 스치는 그림들이다. 일본이 물러가고 내가 만주에
-
한국 혈전 벌일 때 일본 ‘금전’ 쌓였다
한국전쟁 중 일본은 군수물자 보급, 무기수리 등 미군의 병참기지였다. 1953년 7월 일본 기후현 가와사키 항공기 정비창에서 일본 기술자들이 미군기를 수리하고 있다. "일본에 철강
-
[명문家 를 찾아서] 천안 목천읍 동리 이동녕家
지난 2월 천안 목천읍 동리 석오 이동녕 선생 생가 앞에 ‘이동녕기념관’이 문을 열었다. 선생의 손자 이석희 전 대우그룹부회장(왼쪽)과 증손자 이용순씨가 기념관을 둘러보며 담소하고
-
[강준식의 정치비사] 대통령 스토리 이승만②
이승만과 반공주의해방 전의 반공의식관련사진 배재학당에 다닐 때만 해도 평민주의자의 한 사람이었던 이승만은 공산주의의 주요 가치가 되는 평등사상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
-
잘못된 지점에서의 만남, 불행의 서곡
1945 ~48년 미 군정 당시 이승만(사진 왼쪽)과 김구 1946년 2월 1일. 서울의 명동. 붉고 검은 벽돌로 지어 올린 명동성당, 당시는 ‘종현 천주교대강당’이라 불리던 예
-
[6·25 전쟁 60년] 임진강을 넘어온 적 (41) 북한군 포로가 된 미군 장성
윌리엄 딘 소장의 미 24사단이 6·25전쟁 발발 직후 한반도에 급하게 뛰어든 것을 둘러싸고 약간의 논쟁이 있다. ‘대단히 성공적이었다’는 평이 있는가 하면 ‘섣불렀다’는 평가도
-
[조우석 칼럼] 이호철과 현대사 읽기
1980년대에 대학가에서 많이 읽혔던 책 중 하나가 『찢겨진 산하』다. 재일활동가 정경모가 84년 현지에서 일본어로 발표했는데, 바로 해적판이 떴다. 의식화교재였지만, 교양서로도
-
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張學良의 반세기 연금생활
▲1941년 일곱 번째 연금 장소인 기린동(麒麟洞)에서 감시인들과 있는 장쉐량(오른쪽 첫째)과 애인 자오이디(둘째).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감시조 ‘장쉐량 특무대’ 대장 류이광(